고향의 봄은 꽃이 많이 피는 풍성한 곳이었다. 가구 수는 몇 가구 안 되었지만 과수원이 많았기 때문이다. 경사가 낮은 비탈 밭에 자두, 복숭아, 사과, 배나무꽃들이 꽃 대궐을 이루며 흐드러지게 피었다. 과일나무는 잎보다 꽃들이 먼저 더 크게 핀다. 비탈진 밭 위에 사다리를 밟고 올라서서 아래를 보면 장관이었다. 우리 집 과수원에는 배와 사과나무가 많았다. 배나무 관리를 위해 끈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배나무를 휘개한 나무 위에 핀 수많은 흰 배꽃을 보면 너무 아름다웠다. 흰 배꽃은 우와 두 팔을 벌려 환영에 박수를 치게 한다. 마음은 어느새 화가가 되었다. 흰 종이를 준비하고 4B 연필을 잡고 스케치를 한다. 그리고 글을 쓰기도 했다. 원두막 창안으로 들어와 핀 배꽃도 있었다. 가을이 되면 창 안에서 배가 익어가기도 했다.
자두꽃은 처음엔 연두 빛을 내다가 차츰 시일이 지나면서 하얀색을 띠었다. 복숭아꽃은 꽃망울 때에 자주색을 띠다가 분홍색으로 변해간다. 사과꽃은 꽃망울 적에는 진 분홍색을 보이다가 시간이 지나면. 분홍색으로 변해간다. 배꽃은 꽃망울 때부터 흰색을 띤다. 이렇게 종류가 다다르게 이름을 가진 나무들은 매년봄이 되면 화려한 꽃 대궐을 이루며 꽃을 피워 보여 준다. 이때가 되면 언제나 나는 현재 흔적이 없는 꽃날들의 일기장을 썼다. 마음으로 추억의 작품을 만들었다. 꽃들은 소리 없는 꽃으로 눈을 열게 하고 아름다운 향으로 코를 자극하여 무질서하고 완숙하지 않은 예술의 혼을 흔들어 깨운다.
과수원 꽃들이 만개할 때면, 온 동네를 병풍처럼 에워싼 앞산과 뒷산에도 산 앵두며 진달래 벚꽃이 뭉게뭉게 구름이 피어오르듯 꽃의 향연이 펼쳐졌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너무 예쁘고 행복했다. 꽃들이 만개하면 어디서 그렇게 많은 벌과 나비들이 많이 모이는지 참 이 또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자연의 시간표는 사람이 계획하지 않아도 어김없이 매년 날 수에 맞춰서 진행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람은 시간표를 만들어 놓고 수행한다지만 부족할 때가 많고, 결과에 만족하지 않을 때가 많아 후회를 한다. 하지만 자연은 어떻게 때를 아는지 꽃을 피우고 잎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성장하고 때를 따라 익어간다. 자연이 내려 주는 물과 빛을 통해 자양분을 만들어 성장하고 농부의 손길로 돌봄을 받으며 결실을 맺는다.
꽃의 만개는 벌과 나비의 중요한 사명의 역할이 시작된다. 자연을 관찰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역할과 질서가 있는 활동을 알고 있기도 하지만, 나는 자세히는 모른다. 벌 나비의 바쁜 역할이 끝나면 예쁜 꽃들은 소리 없이 꽃잎을 떨구며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꽃이 지면 작은 열매를 만들어 제각각의 열매를 맺혀 보여준다. 열매들은 점점 커지면서 과수원은 온통 푸른 녹색을 띠며 다음 성장점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간다.
푸르다 못해 짙푸른 잎사귀 사이로 초록열매들은 하루하루 다른 모습을 보이면서 성장을 한다. 이맘때가 되면 세차게 내리는 장맛비와 함께 뜨거운 불 볓더위가 시작된다. 여기에 가세한 매미소리 또한 열매를 익어가게 하는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찌앙 찌앙 맴 맴우렁찬 소리를 낸다. 매미소리를 계속 들어보면 음률을 느낀다. 각각의 매미들 마다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해 시를 지었는지 리듬 있는 노래를 부른다. 끝을 낼 때는 찌이이이앙... 찌이이이앙... 매에 에에 맴... 매에 에에 맴... 소리를 길게 늘여 소리를 내기도 한다.
각각의 열매들은 매미들의 응원소리를 들으며 제각기 시즌에 맞게 빛을 발 하며 익어간다. 최근에는 품종이 새롭게 개량되어 익어가는 순서도 바뀌었지만, 가장 먼저 익는 과일은 자두이다.
자두는 이름을 오얏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맛은 신맛과 단 맛으로 종류도 여러 가지다. 그리고 입덧하는 아낙들의 입맛을 돋우는 과일이 된다고 하였다.
다음으로 복숭아가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예쁜 색으로 익어간다. 예쁘고 수줍은 소녀를 비유해 나타낼 때 복숭아의 볼처럼 예쁘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밝으스레 하다는 표현을 많이 들은 것 같다.
다음으로는 사과다 내가 어린 시절 사과는 종류가 국광과 홍옥 아오리라는 것이 있었다. 나중에는 부사라는 새로운 품종도 나왔다. 국광은 홍옥보다 신맛이 덜 하다. 홍옥은 상큼한 사과향과 신맛이 강하다. 부사는 닷 맛과 신맛을 조화롭게 지니고 알도 크다. 이렇게 종류마다 맛도 다 다르게 제 맛을 내며 익어간다.
다음으로는 배가 익어간다. 배 종류는 20세기, 장심랑, 신고, 만삼기, 이마무라다. 가장 먼저 익어가는 배는 20세기다. 색깔은 연두색이다 과육이 연하고 저장성이 짧다. 장십랑은 과일 크기에 비해 껍질이 두껍고 달고 저장성은 20세기보다 조금은 길지만 오래 보관은 어렵다. 신고는 알도 크고 껍질도 얇고 수분도 많다. 맛도 달고 우리나라 고유 명절인 추석 때에 많이 출하되고, 가장 선호도가 높다. 하지만 이 배도 저장성은 길지 않다. 만삼 기는 수확한 후에 긴 숙성시간이 필요하고 가장 오래도록 저장성이 길고 다음 해 햇배가 나오기 전까지 맛을 볼 수 있는 종류다. 이마무라는 껍질이 두껍고 떨 분 맛이 강하고 구수한 맛도 있다. 숙성 시간도 필요해서 선호도가 크지 않았다.
가을이 오면 과수원 근처를 지날 때마다 과일이 익어가는 향으로 가득하다. 질 좋은 결과를 만들어 수고한 농부의 마음을 흡족히 채우기 위해 인내한다. 비바람을 견뎌내며 비록 무성했던 나뭇잎은 찢기거나 낙엽이 되어 떨어지지만 익는 향만은 가득했다. 만고풍상을 겪은 배는 보호막으로 씌워졌던 봉지도 너덜너덜 떨어져 봉지 속에 숨겨졌던 배가 보인다. 우리나라는 장마가 끝나고 가을에 접어들면서 태풍이 자주 온다. 태풍으로 인한 낙과도 많은 계절이다. 과수원지기의 마음을 조이게도 하고 설레게 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만삼 기는 서리가 내리기 전 모두 다 상처가 나지 않도록 수확 후 손질을 해서 저장고에 넣어둔다.
겨울을 나기 위한 배 저장고는 얼룩진 젖소들의 배고픔을 해소해 주고 마른 목을 충분히 적셔 주는 초지 아래에 마련되었다. 초지가 저장고 지붕이 되었고 직각으로 내려가면 저장고 문이 있는 설계로 지어졌다. 저장고 설계는 보온을 위해 그렇게 설계되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흰 눈이 덮이고 추워도 시원하고 하얗고 아삭아삭하고 과즙이 많고 단 맛을 볼 수 있는 것은 저장성 강한 만삼기 덕이다. 만삼기 배는 다음 해 햇 배가 나오기까지 팔로를 기다리며 저장고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