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1994년 1월생이다. 정확한 지는 모르지만 처음 맞는 여름이었다. 머리가 길고 땀이 나면 머리가 젖였다. 미장원을 방문했다. 이발기 소리를 싫어해 너무 울어서 이발을 포기하고 그냥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잠잘 때 가위로 이발을 시켰다. 잠을 깰까 봐 좌우로 돌아 눕히며 매우 조심스러웠다.
세발자전거를 탈정도로 성장하였다. 집 근처에 가깝지는 않지만 복지관이 위치해 있었다. 복지관에서 미용 취미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는 정보를 듣고 등록하였다. 한 주에 두 시간 진행하는 수업을 나는 도보로 아들은 세발자전거를 태우고 다녔다.
취미반이지만 수업도구가 많았다. 가위는 두 종류로 반듯하게 자르는 가위와 멋을 내는 틴닝가위였다. 집게는 머리카락을 나누어 잡을 때 사용 하는 것으로 크고 작은 것으로 두 종류였다. 이발기는 충전을 해서 사용하는 기기로 9미리 6미리 3미리 길이를 구분해 자르는 커트기도 있다. 잘라진 머리카락이 피부에 닿지 않게 하기 위한 커트보도 있다. 커트빝도 세종류다. 긴 가발 모형 머리는 여러 가지 스타일을 배우기 위한 재료다.
파마를 위한 재료는 롯드가 있다. 롯드 종류는 굵고 가는 것도 있다. 핑클 파마용은 찍찍이 그루프와 같은 모양만큼이나 굵다. 스트레이트 파마용은 넓고 길다. 롯드에 머리를 말기 위한부직포와 고무줄도 있다. 파마약은 1제 2제가 있다. 염색약도 있다.
머릿결을 좋게 하는 영양제도 있다.
이렇게 여러 종류의 도구를 사용하며 취미반 수업을 들었다. 약제의 쓰임의 효과와 주위점도 들으며 실습도 하였다.
실제 실습 커트 대상은 아들과 딸의 머리카락이었다. 파마 실습은 유치원 생이었던 예쁜 딸의 긴 머리카락이었다.
이렇게 세발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아들과 함께한 미용 취미반 수업은 3개월 과정으로 끝났다. 어린 아들이 힘들었을 텐데 많이 참아 주었다. 인내한 결과로 수료증을 받았다.
아들은 이발기를 대고 머리를 깎아도 울지 않았다. 2주에 한 번씩 이발을 해주니 늘 단정해 보였다. 초등학교 고 학년 같은 밭 자모들이 ㅇㅇㅇ머리는 어떤 미장원에서 깎는지 궁금해했다. 늘 깔끔하고 윤기가 난다고 했다.
이후 아들과 친하게 지내는 또래 자모들은 다 알게 되었다.
나는 25년 전 아파트 현관문을 열어 놓고 앞집과 마주 보며 살았다. 두 집 아이들이 서로 오고 가며 매우 사이좋게 잘 지냈다. 나는 앞 집 아이의 머리도 깎아 주었다. 아이의 엄마는 초코파이 한 상자를 사가지고 오기도 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며 다음부터는 사 오지 말라고 했다. 지금 그 아이는 어디에 사는지 궁금하다.
나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 하여 만학으로 사회복지 공부를 시작했다. 자원봉사에 대한 구체적인 개념과 활동도 인지했다.
자격증은 없지만 뇌 수술로 여러 해 고생하는 분의 머리를 10여 년을 짧게 손질해 드렸다. 거의 병상에서 생활하는 분이었다. 방문을 원하면 찾아갔다. 와상환자분들은 출장 미용 서비스를 받으면 미용료와 출장비가 지출되기 때문에 부담이 컸다. 이분이 마지막 소천할 때도 나에게 머리 손질을 받은 모습으로 가셨다. 딸의 말에 의하면 어머니가 내가 하는 머리 손질이 맘에 들어 자격 있는 미용사를 부르지 못한다고 했다.
외부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 요양 병원에 가시기. 전까지는 친정어머니 머리도 늘 손질해 드렸다.
교회에서 미용선교도 다녀왔다. 선교지는 태국이었다. 자격 있는 미용사 두 명과 보조세명이었다. 선교지는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린다. 나는 자격은 없지만 그동안 경험으로 손질을 했다. 대상에게 물어보면 마음에 든다고 하였다. 그래도 나는 자격 있는 베테랑에게 마지막 손질을 부탁하고 확인을 받았다.
나를 포함한 세명의 보조 중 두 명 일행은 나를 부럽다고 했다. 자신들은 머리만 감기고 염색제만 바른다고 말했다. ㅎ ㅎ ㅎ~~
내가 소유한 모든 도구는 지금도 남편의 이발을 책임진다. 파마를 할 때는 그때마다 미용재료상에서 약을 구입해 사용한다. 파마약은 3000원 부터있다. 약값이 저렴 해도 파마는 잘 나온다. 염색도 집에서 해결한다.
아들은 직장 관계로 외지에 있으니 머리 손질을 자주 못 한다.
오래전 길에서 연세가 많아 보이는 할머니를 만났다. 어딜 다녀오시는 건가요 인사를 했다. 할머니는 누구세요 내가 이곳으로 이사 온 지 삼 년이 되었는데 아는 체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하셨다. 삼층에 산다고 하니 고맙다고 하셨다. 길 옆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앉으시면서 숨이 차다고 하셨다. 92세라고 하시면서 갈 때가 넘었는데 나 들어갈 자리가 안 비었는지 안 데려간다고 하셨다.
이후 할머니를 자주 만나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따금 한 번씩 만나게 되다 보니 연락처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할머니 자녀들의 연락처도 알아 놓았다. 요즘같이 어려운 시절이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의 연락처가 연세 많은 어르신의 전화번호에 찍히면 가족들이 염려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올해 7월 초쯤 얼굴빛이 붉어보이는 할머니를 만났다. 머리가 길어 뒤 목에 땀이 찬다 고 하셨다. 머리카락이 땀에 젖여 달라붙어 미장원에 어렵게 갔는데 문이 닫혀있어 그냥 돌아오는 길이라고 하셨다. 많이 지쳐 보이는 모습이셨다.
딸 들 보고 조금만 가위로자르라고 하니 말을 안 들어준다고 하셨다.
그럼 제가 손질해 드릴까요 했다. 반가워하셨다. 집에 있는 도구를 가지고 가서 손질을 해 드리기 전 손녀에게 전화를 했다. 혹시나 안 좋은 생각을 염려해서다. 하지만 통화는 못했다.
할머니는 미용 채비가 다 있다며 좋아하셨다. 검정머리카락이 한 개도 없는 백발 머리는 잘 잘리지 않았다. 조금씩 잡고 자르니 그런대로 잘 잘라져 끝을 냈다. 더운 날씨에 간신히 워커를 끌고 갔는데. 문이 닫혀 부야가 많이 났는데 너무 고맙다고 하셨다. 마음에 꼭 든다고 하셨다. 한참 후 만났는데 딸이 미용이 이쁘게 잘 되었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내가 듣기 좋으라고 하셨는지는 모르지만 다행이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1년에 2~3번 파마만 엄청 저렴한 미장원에서 하고 커트는 내 손으로 한다. 가끔 앞머리 파마만 할 때도 있다.
머리 염색도 내가 한다. 염색하는 날 계란 한 개를 깨서 노른자와 흰자가 잘 썩이도록 희석해서 머리영양 마사지도 한다. 보는 이들이 머릿결이 윤이 나고 좋아 보인다고 한다. 본인들은 커트, 영양파마, 염색까지 하면 매우 많은 액수를 미장원에 지출한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아는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머리염색을 해 달라고 했다. 2년여 전부터 알고 지내는 지인이다. 코로나로 인해 경기가 어려워 미용비 지출이 부담스럽다고 하였다. 긴 머리를 미용도구를 가지고 가서 잘라 준 적이 있다. 그때 지인은 한번 가면 10만 원짜리 파마를 한다고 했었다. 긴 머리를 혼자서 자르는 방법도 알려 주었다. 그 후로 혼자서 머리를 자른다.
그동안은 흰머리가 많지 않았는데, 갑자기 흰머리가 꽤나 많아졌고 한다. 5000원짜리 염색약을 사 왔다. 머리숱이 많지 않으니 반 정도만 짜서 희석하라고 하였다. 지인은 모자란다며 1제와 2제를 다 짜서 희석해 놓았다. 충분하게 도포를 했어도 반 정도가 남았다. 버리기에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남은 것은 얼른 가서 남편분 염색하는 분이면 염색해 주라고 했다.
며칠이 지났다. 남은 약으로 남편 머리도 염색해 주었다고 하였다. 본인머리 염색도 만족하다고 하였다. 계란도 깨서 희석해서 영양공급도 하고 마사지도 했더니 머리카락이 윤기가 난다고 하였다. 미용비를 줄이게 되어 고맙다고 하였다.
염색 시 영양공급을 위한 계란 마사지는 염색약 설명서의 시간이 경과된 후에 도포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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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증 없는 미용사 2024,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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