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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숭아 꽃 물 2024년 10월24일

by 샛별상담소 2024.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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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고향집 뜰과 장독대에는 봉숭아 꽃이 많이 피었다. 빨간색 보라쌕 하얀색이 피었다. 여를 방학이 되면 꽃잎을 따 모아 빻아서 손톱에 봉숭아 꽃 물을 들였다. 봉숭아 꽃 물을 들이기 위해서 미리  준비를 하여야 했었다. 손톱에 물이 들기까지는 한 밤을 지내야 했기 때문이다.

봉숭아는 씨앗도 많이 영글어 잘 퍼지는 소박한 식물이다. 돌 틈에서도, 메마른 땅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이다. 수줍은 듯 화려하지도 않은 꽃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여성들의 손톱에 미를 더 해 주는 빨간 꽃물. 동종인지  다른 종인지도 모르면서 울 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 하다는 노래를 많이 부르기도 했다. 지금도 이 가사를 생각하면 비 내리는 여름날 초가지붕의 낙숫물 소리와 화단 돌  틈에 자라던 봉숭아 생각이  눈에 선 하다.

(다음창에서 검색해 옮긴 이미지입니다.)

어머니는 저녁을지어야 하는 보리쌀을 먼저 닦아 놓으셔야 했다. 보리쌀은 적당량을 쌀 뒤지에서 퍼 옹기 판내기에 담아 가지고  우물가에 가서 닦아야 하셨다.

우물은 동네 좌측  감나무가 두 그루 있는 아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셈물은 윗 물과 아랫 물로 나누어져 있었다. 윗 물은 물 셈에서 솟는 물이  계속 넘쳐났다. 아랫 물은 넘쳐 나는 물이 아래로 묻힌 통에 받아져 넘치면 아랫 물은 수채로 흘러 농토로 흘러 들어갔다.
윗 물은 식수로 쓰이고 아랫 물은 빨래나  세수 등물을 하는 데 사용하는 허드렛물로 사용되었다.  

(그 당시 마을에 있던 셈물 모형)

(다음창에서 검색해 옮긴 옛날 우물 이미지입니다.)

파내기에 담긴 보리쌀은 위 물로 닦았다. 보리쌀 닦는 파내기는 밑 부분이 네모칸 모양 엠보싱이 올 록 볼록 만들어져 있었다. 보리쌀이 잘 닦아지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보리쌀은 속 껍질이 잘 벗겨지도록 오래 문질러 닦아야 했다. 제대로 닦이지 않으면 밥을 지었을 때 밥이 검은빛이 난다고 했다. 그리고 점성이 낮아 차지지도 않고 윤기도 없다고 하였다. 그 시절에는 쌀이 귀한 시절이라 보리쌀과 쌀을 혼합해서 밥을 지었다.

저녁을 지을 준비할 때즈음이면  화단에 분꽃이 활짝 피었다. 어머니들은 분꽃이 활짝 피면 저녁 준비를 했었다. 분꽃은  오후가 되면 점점 피기 시작해서 저녁준비를 할 즈음이면 활짝 피었다. 분꽃이 저녁때를 알리는 시계 역할을 하였나 보다. 이 또한 자연의 신비였나? 지나고 나니 참 아름다운 기억이다.

분꽃은 꼬마들의 소꿉놀이 도구도 되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피고 지기를 여러 번 하면 둥글고 오돌토돌한 까만 씨앗이 떨어진다. 검은색 씨앗을 한꺼번에 많이 주어 모아 껍질을 까면 하얀 분 가루가 나온다.  분가루를 곱게 갈아 얼굴에도 바르고 손등에도 발랐다. 작은 손으로 수작업해서 만든 천연 자연 화장품이 되었다.

(다음창에서 검색해 옮긴 분꽃 이밎입니다.)

봉숭아꽃과 잎을 적당량 따 모아서 장독대에 놓인, 조금은 넓고 가운데가 움푹 파인 돌에다  찧는다. 오른손으로 찧는 돌은 냇가에서 주워온 둥근돌을 사용한다. 찧을 때 백반과 셩풀도 넣었다. 꽃물이 손톱에 잘 스미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다 찧어진 봉숭아는 사기그릇에 넣어 보관했었다.  

        (  다음창에서 검색해 옮긴 셩풀, 궹이밥.  시금초라고 한다 )
꽃 물을 손톱에 놓고 손가락을 싸기 위해서는 시멘트 포대를 네모지게 오려 놓았다. 실은 어머니가 이불을 꿰맬 때 쓰시는 굵고 두꺼운 하얀 무명실이었다. 아주까리 잎도 생각난다. 아주까리 잎은 잘 묶어야지 조금 헐렁하게 묶으면 꽃 물이 손톱 밖으로 다 흘러나와 옷이나 이불을 오염시켰다. 감잎도 넓어서 사용한 것 같은데 크게 기억이 안 난다. 잘 찢어지는 성질이 있다. 이렇게 하면 꽃물 드릴 준비는 다 끝난 것이다.

(다음창에서 검색해 옮긴 아주까리 잎과 씨앗 이미지입니다.
)
저녁설겇이가 끝나면  꽃 물을 손톱에 드린다. 너무 헐렁하게 묶으면 꽃물이 흘러내리고 너무 꼭 꼭 묶으면 손가락이 아팠다. 그래도 참아야 했다. 빨갛게 물이든 예쁜 소톱을  기다리면서~~

봉숭아 꽃 물은 집에서 가족끼리도 들이고 또래들과 모여서도 들였다.
집에서 드릴 때에는 오염을 염려해 어머니는 어두운 색 이불을 덮어 주신기억이 난다.

또래들과 모여 드릴 때는 커다란 평상에 앉아 서로서로 묶어 주었다. 손톱에 꽃 물을  드리느라  묶인 손이 불편 해도 옥수수를 입에 대고 옥수수를 먹었다. 술로 반죽한 밀빵도 있었다. 술 냄새는 안 좋았지만 드문 드문 섞여 있는 풋 강낭콩은 포근포근하니 맛이 좋았다. 매년 6월 22일 하지가 지나기 전 수확하는 감자도 있었다. 감자를 모닥불에 구워 먹기도 했다. 탄 감자를 먹으면 입 주위가 까맣게 색칠도 되었다.

묶인 손을 가슴 위에 얹고  많은 이야기를 조잘조잘거렸었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까르르까르르 웃음소리도 그치지 않았다. 누워서 하늘을 보며  초롱초롱 빛나는 별자리도 찾았다. 저건 북극성 저쪽에 있는 건 북두칠성도 찾았다. 무수히 많은 은하수 별도 하나 둘 세어 보면서 ~~ 가끔 별똥별도 보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를 때도 있었다. 해충을 막기 위해 풋 쑥 풀로 놓아진 모닥불도 있었다. 연기가 맵고  냄새가 역겹지만 해충을 막아 주는 매우 유용한 어른들의 지혜이었다. 꽃 물이  들고 있을  손톱이 궁금해 잠깐 살짝 풀어도 본다. 아직 제대로 물 들지 않은 손톱 색깔은 옅은 주황색이었다. 그럼 다시 얼른 묶었다. 이럴 때면 어머니는 자발 적다 (  진중하지 못하다는  뜻이었다. )하셨다.

새벽녘이 되면 닭들이 양 날개로 홰를 치며 꼬끼오 소리 내어 새벽을 알렸었다. 더운 여름이지만 시골 밤공기는 조금은 썰렁했다.  찬공기를  막아주던 홑이불(속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고 한 겹  천으로만 만들어진 여름이불)은 이슬이 내려 촉촉한 느낌이었다.

한밤이 지났으니 한 손가락 한 손가락을 호기심 가득 찬 설레는 마음으로 서로서로 풀어주며 잔뜩 기대에 찼었다. 얼마나  진하게 빨갛게  꽃물이 들었을지  궁금해하면서 마음을 조이며 풀었다. 푼 손을 모두 모아 누구 손이 더 잘 들었는지 비교도 했었다. 봉숭아 꽃물이 발갛게 든 작은 손들의  모임은 참 예뻤다. 손톱 바로 위 손가락 피부가  쪼골 쪼골하게 주름이 잡히고 불어 있었다. 그래도 빨갛게 물든 손톱을 보면 기뻤다. 이렇게 동화 같은 한 밤이 지나갔었다.

그 시절  함께 했던 또래들은  그 기억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잊고 있을까? 다음에 만나서 물어보고 이야기해 보아야겠다. 나와 똑같은 기억으로 추억하고 있을까?  아니면 더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간직하고 있을까?  정말 많이 궁금하다. 봉숭아 꽃 물을 들이기 위한 한밤을 기억하며 어린 시절로 돌아가  머리로 마음으로 문자로 여행을 했다.

기억의 각기  다른 장면이 그려질 때마다. 머리에는  도파민이 형성되고, 엔도르핀이 넘치는 기분이었다. 눈은 나 혼자 만의 시선으로 수십 년 전의  장면을 왔다 갔다 하면서 빨 주 노 초 파 남 보 칼라를 바꾸며 스케치를 했다. 재미있는 장면에는 입가에 소리 없는 미소를 경험하였다. 내 손의 움직임은 소중한 문자 한 자 한 자가 완성되고, 스토리를 엮어 문장이 만들어졌다. 어릴 적 내 모습이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답고 아늑하고 정겨운 여행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친정집에 가서 봉숭아 꽃을 따다 꽃물을 들여 주었다. 아이들이 호기심도 가졌었고 즐거워했다. 아이들도 내가 꽃물 드릴  때 들었던 기분이었을까? 한번 물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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