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KbS아침 프로그램에 곶감이 대량으로 생산되는 것을 보았다. 현대 문명의 발달로 잘 깎아진 곶감을 건조장으로 옮길 때 지게차를 사용해 옮기는 것을 보니 옛날과 비교가 되었다. 재래씩 곶감 만들기와 비교를 하면서 추억으로 남기고 싶어 글을 쓴다.
곶감의 원 재료는 감이다. 내 가시골에서 성장할 때는 간식이라고는 집에서 농산물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전부였다. 감은 어린순으로 차의 원료도 된다고 한다. 감꽃이 피면 이른 아침 주워 모아 어린이들의 간식이 되기도 했다. 실로 꿰어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기도 했다. 아침 일찍 떨어진 꽃은 통통하고 맛은 달콤하기도 했다. 수분이 날아가면 모양도 다르고 색깔도 보기에 안 좋게 변했다.
감나무는 날씨가 더워지면서 잎사귀에 윤기를 내면서 잘 자란다. 핀 꽃이 떨어지면 감도 점점자라 여름방학이 되면 수먹어리( 벌레 먹은 감 )이거나 자연히 익는 (물렁감)을 먹을 수 있었다. 감전지(감 따는 도구)를 사용해 따서 먹을 수 있었다. 또는 저절로 풀밭에 떨어져 깨지지 않은 것을 주어 먹기도 했다. 감은 소독을 하지 않아도 기온이 따뜻한 지방에서는 잘 자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외갓집은 경기도 안성인데 그곳은 기온이 충청도 보다 낮아 감나무가 잘 안 자라고 겨울이 지나면 죽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우리 집에는 여러 종류의 감나무가 많아 가을이면 감이 참 많았다.
여름방학이 지나고 추석 때가 되면 어느 해는 초록색이고, 어느 해는 감색을 띠며 붉게 익는다. 이것을 두고 시절이 가는 것을 올 된다. 늦된다고 표현도 했다. 올 되는 해는 감이 제대로 익어 감색깔을 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감맛이 생으로 먹을 수는 없다. 탄닌 성분을 지니고 있어 떨 분 맛이 있기 때문이다. 추석 차례상에 올리기 위해서는 우려내야 했다. 물을 뜨겁게 데워 토기로 만들어진 질 항아리에 넣어 풀이나 짚으로 위를 덮고 뚜껑을 덮는다. 그리고 한 밤을 지나려면 물이 빨리 식지 않도록 항아리를 두꺼운 이불로 폭 싸아줬다. 물 온도가 지나치게 뜨거우면 감이 터지고, 적당한 온도면 터지지 않고 잘 우려 졌다. 온도계가 흔치 않은 시절이니 물을 데웠을 때 맨 손을 넣어 적당한 온도를 감지했다. 우려진 감은 소쿠리에 넣어 놓으면 물이 제대로 자연히 빠져야 떫은맛이 나지 않고 달았다. 추석이 지나고 오곡이 영글어 타작이 끝나면 감 수확이 시작된다. 이때가 되면 감나무마다 잘 익은 감들이 주렁주렁 달린 나무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아름다운 시골의 가을 풍경은 더욱 풍성하고 아름다웠다. 많이 열린 가지를 꺾어 벽에 걸어 놓고 보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감이 익어 홍시가 되면 따 먹기도 했다.
시골을 떠나온 지가 오래되었지만, 감 종류는 생각이 난다. 장중감, 대접감, 워라감, 수수감, 고염, 이 있었다. 더 많은 종류가 있었겠지만 우리 마을에는 이 정도가 있었다. -장중감은 수분이 많고 단 맛은 덜 했다. 수확을 할 때까지 참 많은 수의 감이 빨갛게 달려있었다. 수확을 할 때 흠집이 나지 않도록 잘 따서, 겨울에 단지에 캐캐로 짚과 감을 넣어 부모님이 연시로 만들어 주셨다. 긴 겨울방학 하얀 눈이 내린 날들 간식으로 먹었던 기억이 난다. 부모님 생전에는 식초재료로 많이 사용하시기도 하셨다. 커다란 통에 감을 넣어 일정기간 그늘진 곳에 두면 하얀 막이 올라오면서 감 식초가 만들어졌다. 잘 숙성된 식초는 식용으로 약용으로 소비가 되었다. 약용으로는 물과 희석해서 적당한 맛으로 즐겼다.
-대접감은 대접과 같이 넓적하니 컸다. 과육이 조금은 거칠고 단 맛은 덜했던 것 같다. 수도 그렇게 많이 열리지 않았다. 사이즈가 커서 곶감을 켜면 (깎으면) 건조는 잘 안 되었지만 양이 많았다. 워라감의 크기보다는 배는 컸다.
-워라감은 감 중에서 가장 맛이 좋아 우린 감으로 많이 먹었다. 부모님은 소풍이나 운동회 때도 우린 감을 해 주셨다. 곶감재료로도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단 맛도 많고 과육도 부드럽고 곶감으로 만들어 햇볕이 잘 드는 남향 처마 밑에 걸려있던 풍경이 예뻤다. 건조도 잘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수수감은 우리 집에는 없고 이웃집에 있었는데 크기가 작았다. 이감도 연시용으로 쓰였다.
- 고염은 정확한지는 모르겠는데 감나무의 씨가 떨어져 돌로(저절로) 나거나 새들의 배설물을 통해 나서 산이나 들에 자생한다. 큰 나무가 되어 많은 수의 열매가 열고 약제로 쓰인다고 하였다. 쌀로 만든 조청에 다려 겨울에 두고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감종류는 요 정도이다. 곶감을 만들기 위해서 감을 따는 일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긴 장대에 대나무를 갈라 끝 부분을 뾰족하게 해서 컵모양의 망을 만들어 사용했다. 감 한 개를 컵 모양 안에 넣고 오른쪽으로 돌려 비틀면 가지가 꺾여 따져야 곶감 재료가 되었다. 왜냐 하면 감꼭지에 양쪽으로 가지가 있어야 끈을 묶어 매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감나무는 결이 연해 자칫 하면 잘 부러져 위험하다고 하였다. 이런 약점이 있어 높은 곳에는 장대를 로 만든 전지를 사용해 한 개 한 개씩 따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따 모은 감들을
바지게나 리어카를 사용해 집으로 들여왔다. 시즌이 되면 저녁 늦게 까지 가족들은 잘 드는 칼로 감을 깎았다. 가장 먼저 초록색 감꼭지를 칼로 도려낸다. 그다음 앞쪽 중앙에서부터 둥글게 꼭지부근까지 깎아 완성한다. 통풍이 잘 되게 하기 위해 깎은 감은 광주리나 채반에 넣는다. 다음 아침 일찍 왕골 속대 말린 것으로 깎은 감을 양쪽으로 균형을 잡아 묶어 처마에 줄을 매어 매달았다. 가을은 볕 드는 시간이 짧고 안개가 끼는 날이 많았다. 곶감을 건조하는 일은 참 까다로웠다. 집집마다 건조를 위해 남향에 걸어 놓은 풍경이 참 보기에 좋았다. 자칫하면 당분이 많고 수분이 많아 건조가 쉽지 않은 곶감은 곰팡이가 일 수 있어 손이 많이 갔었다. 제대로 건조된 곶감은 겉면에 하얀 밀가루를 입힌듯한 분이 인다. 그것을 부모님은 하얗게 시설이 일었다고 하셨다. 정말 입에 넣어 보면 단 맛이 느껴졌다. 잘 건조된 곶감은 감 껍질을 잘 말려 사이사이에 넣었다. 장기간 보관을 위해 공기가 잘 통 하는 대나무나 댕댕이 재료로 만든 바구니에 보관하였다. 다음 해 곶감이 나올 때까지 제수 품이 되었다. 아이들 간식도 되었다. 친척들의 경사에 인사 선물도 되었다. 귀한 손님 대접의 음식도 되었다. 어머니는 자녀들의 단임 선생님이 가정 방문 시 대접음식으로 대추와 곶감을 내놓으셨다. 곶감씨를 제거하고 곶감 속에 대추와 잣 호도를 넣어 술안주를 만들기도 했다. 곶감의 단 맛과 견과류의 고소한 맛이 어우러져 맛이 좋았다.
늦가을이 가고 초겨울 찬 바람 일 때쯤 처마에 걸린 곶감을 거두어들였다. 아버지께서 왕골속 끈으로 열개씩 묶어 보기 좋게 보관하셨다.
( 위 사진들은 다음에서 검색해 옮겨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