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 어느 날 첫눈이 내리는 인성교육 강의실 배경으로 추억을 더듬어 글을 쓴다. 20여 년 전으로 나의 생각과 마음은 그 시간의 여행을 한다. 만학으로 공부를 하기 위해 사회복지학과에 지원하여 과 대표 장학금도 탔다. 교정은 매우 아름답게 그려진다. 사회복지 강의는 거의 인성관이라는 교육관에서 이루어졌다. 강의실 가는 길은 약간 비탈진 오르막 길을 올라가야 했다. 봄이 오면 왼쪽에 벚꽃나무들은 밤에도 빛이 아닌 하얀 칼라로 꽃을 피워 어둠을 밝혔다.
교수님들을 만나면 꽃이 흐드러지게 핀 벚나무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만학도 엄마 학생들은 꽃을 바라보며 꽃과 같은 미소와 밝은 표정을 지으며 등, 하교를 한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꽃은 지고 초록열매를 맺는다. 열매는 익어 까만색을 띠며 약간 쓴맛과 단맛을 느끼게 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학교에선 학생 신분이지만 엄마표 도시락을 싸 가지고 와서 몇 무리로 나누어 각자 준비해 온 음식을 서로 나누어 점심을 먹었다. 반찬 중에 미역 냉국이 기억난다. 여러 명이 나누어 먹어야 하기 때문에 꽤나 큰 통에 불린 미역과 파 양파 마늘 깨소금 맛소금을 넣어가지고 가서 물은 정수기물을 넣어 냉국을 만들어 나눈 기억이 난다.
점심식사가 끝나면 강의실 밖으로 나와
손이 닿는 버찌를 따서 입안이 까맣게 물이 들도록 버찌를 따 입에 넣기도 하였다. 만학 엄마 학우들은 벚나무가 심어져 있는 그 길을 오르내리며 등교와 하교를 반복했다. 각자의 생활이 모두 다르다 보니 주고받는 이야기도 다르지만 정겨웠다.
가장 많이 나누는 이야기는 과제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땐 만학도들에게 컴퓨터가 익숙하지 않았다. 물론 매우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주로 남편이나 자녀들에게 부탁하는 시기였던 것으로 생각한다. 나 역시 장학금 대상자였지만 컴맹이었다. 모든 리포트는 수기로 해결하였다. 걷 표지에는 색연필로 주제와 연결되도록 카네이션을 그려 넣었다. 지금이라면 사진을 넣었을 것이다.
인성 교육 강의 리포트도 수기로 작성하였다. 페이지 수는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담당 교수님은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분을 본인 스스로 선정하여 발제문을 만들어 발표 을 하여야 한다고 하셨다. 발표를 할 시간이 다가와 300여 명의 학생들은 통합 강의실로 모였다. 그날은 그 해 첫눈이 내렸다. 많은 학생들은 강의실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흩날리는 하얀 눈을 바라보며 매우 즐겁고 신나는 모습을 보였다. 강의실은 계단식으로 창밖으로 눈 오는 풍경을 모두 볼 수 있었다.
드디어 발표할 시간이 되었다. 교수님은 가장 먼저 제출된 리포트가 내 것이라며 첫 번째로 발표를 제시하셨다.
준비된 발제문을 가지고 앞으로 나가 발표를 시작해서 읽어 내려가다가 더 이상 발표를 하지 못할 정도로 눈물이 흘러내려 중단하고 서 있을 때 교수님이 대신하셨다. 교수님도 한참을 눈시울을 붉히며 중단하는 모습을 보이셨다. 함께 했던 학생들도 첫눈을 보며 즐거워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매우 조용한 강의실이 되었다.
내가 준비한 발제문은 제목이 어머니였다. 20년 전에는 수기로 작성했지만 이후 컴퓨터를 배워서 한글 파일로 옮겨 놓았다.
제목 : 어머니
어머니에 대한 저의 마음을 표현해 보려고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어머니의 몸과 마음과 정성 어린 손길과 희생을 통하지 않고 존재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어머니란? 사전적 의미로
1, 자기를 낳은 여자 모친.
2, 자기의 양 어머니 새어머니 수 양 어머니를 이르는 말.
3, 자식을 가진 여자를 대접하여 일 겉 는 말.
4, 사물을 낳는 근본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높임말(어머님) 낮춤말(어멈, 어미)라고 한답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 누구인가 물으면 나의 어머니라고 답 할 수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올해 연세가 여든이 되셨습니다, 건강이 안 좋으셔서 휠체어를 사용하시면서 생활하십니다.
어머니가 58세 되시는 해 나는 결혼이란 이유로 어머니 곁을 떠나왔습니다, 두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시키면서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이 내 마음에 더 크게 자리 잡혀 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어머니가 겪으신 고통 을 작게나마 똑같이 겪은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이 아프기라도 하면 어쩔 줄 몰라하다가 아이들의 몸이 회복되면 나 자신이 병이 나고 이런 상황이 반복될 때마다 나는 어머니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되고 어머니는 정말 위대하시고 장하시다고 늘 표현합니다.
어머니는 나와 언니 오빠 동생들을 십 남매나 생산하시고 키우셨습니다, 어머니의 희생과 자애로우심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어머니 생각만 해도 가슴 뭉클하며 언제나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금방이라도 달려가 엄마하고 가까이에서 손대고 만지고 싶은 어머니이십니다.
어린 시절 제 기억의 어머니를 그려 봅니다. 까맣고 긴 머리를 곱게 빗어 은비녀를 꼬자 쪽지시고 큰 소리를 내지 않으시며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저희를 이르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명절 때 면 손수 옷감을 마련하시어 설빔 추석빔을 손수 꿰매어 만들어 주셨던 어머니 지금 생각하니 다산으로 늘 잠은 얼마나 부족하셨을까, 몸은 얼마나 피곤하고 아프셨을지, 어머니 곁에 있을 때 왜 조금이라도 어머니를 편하게 해드리지 못했는지 후회스럽고 마음이 아픕니다.
산골마을이라서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해질 저녁 무렵 켠 등불을 밤새 일 하시느라 끄지 못하시고, 다음날 새벽 자식들의 먼 거리 등교를 위해 그 등불을 그대로 들고 부엌으로 가시어 아침밥을 지으셨을 어머니!......
십 남매의 양육과 교육과 분가(성혼) 집안의 대, 소사에 경제적인 부담에 얼마나 힘겨우셨을지, 아무리 정성을 다해 어머니를 모시고 생각한들 어머니의 은혜에 천분의 일만 분의 일도 되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많이 노쇠하시어 곱게 빗어 예쁘게 쪽 지셨던 까만 머리는 하얀 머리가 되고 고우신 이마 위엔 수고에 주름이 가득하신 어머니, 곱고 솜씨 있던 어머니의 손은 이제는 힘이 없고 거친 손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옷 입으신 매무새가 아름다우셨던 어머니, 구부러진 어머니의 허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십 남매의 어린 시절 가장 안락하고 안전하게 침대역할을 했던 어머니의 무릎은 왜 그렇게 아프셔야 하는지 품 안에 안기었던 자식들보다 이제는 힘이 없고 약해지신 팔순의 어머니!
5년 전 혈압으로 인해 혼자서는 외지 출입을 못하시는 어머니 얼마나 불편하시고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으신 것이 많으실까, 마음대로 움직여 지 지 않는 몸으로, 얼마나 마음이 상하실까, 그러나 한 번도 자식들에게 내색하지 않으시고 괜찮다 나이 들면 다 그래 하시면서 자식들의 마음에 행여 짐 이들까 염려하시는 어머니...! 할 수 만 있다면 고운 얼굴로 만들어 드리고 싶습니다. 하얀 머리는 까만 머리로 힘이 없는 손과 다리도 건강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마음껏 외출도 하시고 많은 세월을 혼신을 다해 희생과 사랑으로 키우신 자녀들의 삶터도 마음대로 언제든지 보고 싶을 때 보실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습니다.
작은 의견 에도 귀 기울여 들으시고 인정하며 옳고 그름을 쉽게 판단하지 않으시던 어머니...!
이제는 진리에 길을 염두에 두신 듯 건강하실 적 등에 업고 품에 안고 귀여워 어르시던 손주들 손에 기꺼이 어머니의 마음을 들려주시면서 내년엔 내가 또 줄 수 있을까 하시며 장성한 손 주 들 까지도 어루만지시는 모습이 생각납니다.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어머니...
우리 모두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이곳에 계신 모든 어머니 학생들과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특별히 한국사회 복지를 이루기 위하여 ㅇㅇ대학 사회복지학과와 아동복지과에 뜻을 두고 모인 우리는 어머니의 사랑을 덫 입고 한국사회 복지를 위하여 노력한다면 사회복지 실천 인으로서 최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고서
과목명: 인성교육과 진로탐색
담당교수: ㅇ ㅇ ㅇ 교수님
학과: 사회복지과
학번: 2004ㅇ ㅇ ㅇ ㅇ
이름: ㅇ ㅇ ㅇ
제출일: 2004 ,11월
어머니는 이후 15여 년을 이 땅에 더 계시다 2019년 5월 5일 어머니의 희생과 수고로 남기신 자녀들을 뒤로하시고 먼 길을 홀로 다시는 뵐 수 없는 먼 길을 떠나셨다.
강의가 끝나고 교수님은 발제문이 인성 교육에 내용이 좋아 교지에 올린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 후 올려졌는지는 확인을 하지 않았다. 강의 시간 내내 여기저기서 학생들의 비언적인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떤 만학도는 그 당시 나이가 30대 후반인 같은 과 학우였다. 태중에 아기를 품고 있었는데 친정어머니가 안 계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언니 이렇게 나를 울리면 어떻게 하냐며 두 눈이 붉게 충혈된 얼굴을 보여었다.
글을 쓰다 보니 방 안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니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컴퓨터 사용에 대해 현재 나의 수준을 생각해 본다. 20년 전 나는 컴퓨터를 끄고 켜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혹여 잘 못 하다 고장이 날까 두려워서였다. 그래도 오늘 은 이렇게 내가 생각하는 대로 쓰고 하고 싶은 대로 맥을 잡아가며 문장을 만들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컴맹 탈 줄을 한 것인가 생각도 한다. 나는 오래전에 뿌리 공원에서 주최하는 족보대학 과정을 수료하였다. 그 당시 교육 과정에 대전 정부청사 안에 국가 기록 관을 방문하여 둘 러 보는 과정 이 있어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지도하시는 분이 기록에 대한 소중 함을 들 려 주셨는데 수년이 흐른 지금 잊고 있었는데 기억이 새롭다. 기록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역사의 전문가도 아니고 견문도 없지만 순간 상형 문자가 생각난다. 글을 써 내려오다 보니 글의 소중 함이 느껴진다. 힐링글쓰기를 접 하고 강의를 듣지 않았다면 이러한 생각은 아예 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글을 써보기 의해 먼저 살아본 나의 삶의 경험을 20여 년을 내려가 보았다. 추억을 끄집어내어 문자로 남기는 한 타 한 타가 목적지를 향 해 가는 여행자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훗날 나에게 좋은 추억의 기록이 되어 있기를 생각해 본다.
이번 글로써 내려간 나 만의 추억 여행인 2004년 11월 첫눈이 내리는 통합 강의실은 매우 소중하고 아름다운 여행이다. 혼자서 방 안에서 나의 경험과 기억과 컴퓨터와 소통하는 매우 조용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기록으로 남기는 나만의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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